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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내 상황은 여러가지로 좋지 않았다. 약간은 억울했던 퇴사를 했고, 이미 끝난 줄 알면서도 놓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던 관계에 이별을 고했다. 2~3주 정도를 방안에 틀어박혀 멍하니 지내다가, 포트폴리오나 만들겸 가상의 게임 플레이 동영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처음 기획은 단순했다. 모바일로 가디언 히어로즈같은 게임을 만든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당시(2011년)에 3D모바일 게임 자체가 흔치 않던 시절이니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어차피 동영상으로 만들 예정이었지만, 게임 플레이처럼 보이기 위해 정말로 모바일에서 가능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야 했기에 폴리곤은 적어도 매력적인 리소스를 만들고자 했다.

게임 디자인적으로는 영상이지만 특정한 공격에 따른 일관적인 리액션과 효과가 필요하고, 스킬이 가진 쿨타임과 적의 속도와 나의 속도를 고려한 행동의 타이밍도 중요했기에 이런 부분을 엑셀에 타임시트로 만들어두고서 작업을 시작했다.

퇴직금이 떨어져 갈 때 즈음 지인 분을 만나 만들던 동영상을 보여드렸는데, 동영상 말고 게임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솔깃한 제안을 듣게 된다. 그렇게 창업을 준비 중이라는 Y씨를 소개 받게 됐는데 Y씨에 대해 알아보니 평판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프로젝트를 완료해 디렉터 혹은 PD라는 새 커리어만 만들 수 있다면 다른 어려움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 게임’에 대한 열망이 컸고, 또 어렸고 겁이 없었다.

이 결심은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날 다시 일으켜주고 버틸 수 있게 해주던 요인이었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몇 차례의 만남과 설득을 통해 겁도 없이 퇴직금과 보증금 일부를 털어 창업에 덜컥 뛰어들고 만다.

합류할 프로그래머가 있다던 Y씨가 데려온 또 다른 창업 멤버 R씨는 게임과는 관련 없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프로그램 작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3D 모바일 게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었고, 당시의 모바일 게임은 2D위주였기 때문에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 R씨를 설득하기 위해 그래픽 리소스도 미리 만들어둘 겸 전에 만들던 동영상 프로토타이핑을 현재 회사에 맞춰서 새롭게 제작하게 됐고, 그것이 상단의 그 동영상이다.

그리고 동영상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만들어진 영상을 편집해 프로모션 영상을 만들었고, 이 영상 덕분에 회사는 투자를 받고 새로운 프로그래머도 뽑으면서 제대로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했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이후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진 않다.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부족함의 결과였다.

망해버린 프로젝트를 되짚는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 짚을 생각은 없지만, 초반에 쓴 것처럼 결국 창업을 해봤고, 투자도 받을 수 있었고 하나의 게임을 스스로 구상하고 완성해보는 프로젝트 디렉터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소중한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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